환선굴, 대금굴 같은 이름난 동굴들과 멋진 풍광의 해변을 간직한 강원도 삼척(三陟) 여행은 자전거족들이 인터넷 지도를 살펴보다가 눈길을 끄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삼척시에서 미로역-신기역-도계역에 이르는 영동선(嶺東線) 철도 노선을 따라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하천인 오십천(五十川)이 흐르고 있다.

영동선 기차 길 옆으로 하천이 마치 연리지 나무처럼 꼭 붙어 함께 북쪽으로 동행하고 있다.

이 하천 길을 따라 자전거 타고 달려보면 영동선 철마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첩첩산골이 대부분인 삼척 땅이지만 오십천이 있어서 덜 힘들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십천이 가장 가까운 영동선 도계역까지 가는 유일한 무궁화호 열차를 타게되면 KTX 열차나 관광열차에 비해 누추할 정도의 소박한 열차지만 자전거족에겐 친근한 열차다.

이는 열차 내 카페 칸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계역에서 오십천 길 따라 삼척시까지는 약 33km. 자전거족에게는 그야말로 최상의 코스로 꼽히고 있다.

오십천 변을 따라 태백시 통동의 동백산역을 지난 열차는 첩첩산골 통리협곡이 있는 삼척시 도계읍에 자리한 도계역에 잠시 정차한다.

아직도 증기 기관차 시절의 급수탑이 남아있는 아담한 역사(驛舍)의 기차역이지만 도계읍은 5일장이 열리는 전두 재래시장, 중고등학교, 대학캠퍼스, 버스터미널 등이 있는 읍(邑)보다는 면(面)에 어울리지 않는 큰 동네다.

기차역 건너편에 오십천이 기차 길 옆을 따라 동해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산이 많다 보니 삼척에는 논이 적고 밭이 많아 농산물은 그리 풍부하지 못하지만, 대신에 광산물 자원과 수산물이 풍부한 편이다.

삼척에서 많이 나는 광물은 석탄과 석회석이며 주로 산으로 둘러싸인 도계읍 쪽에 광산이 몰려 있다.

산이 많은 삼척의 특이한 점은 이곳의 산은 거의 석회암 성분을 띠고 있으며 도계읍을 지나 흐르는 오십천변이 유난히 회색빛으로 보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해안까지 산지가 발달해 평야가 적은 강원도 삼척의 자연은 '천길 푸른 석벽에 오십 맑은 냇물'이라는 오십천(五十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오십천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백산에서 원통골로 넘어가는 큰 샘에서 발원해 삼척 정상동에서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48.8km 유역면적 294㎢의 강이다.

이 냇물을 따라 철로와 교통이 발달했고, 옛날 삼척에서 영남으로 오고 가는 길은 오십천을 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이 오십천을 따라가자면 어림잡아 오십여 번 물을 건너야 했는데, 물굽이가 오십 굽이나 된다고 하여 오십천이라 불렸다.

기차를 타고 편하게 갔다면 모르지만, 자전거를 타고 삼척시 오십천 하구까지 가보면 하천의 굽이치는 곡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하천변길, 뚝방길, 38번 국도, 영동선 철길 옆 등 다양한 길을 달리다 보면 폐역에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 된 무정차 무인 간이역을 만날 수 있다.

등록문화재 336호가 된 삼척 '하고사리역'으로 동네 이름에서 따온 기차역이다.

특히, 삼척시 도계읍에는 고사리, 발이리, 차구리, 마차리 등 마을 이름도 독특히 여행객들의 기억에 남는다.

오십천 길을 달리다 만나는 기차역은 자전거 여행자에게 좋은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 조선 왕조 선대 능묘인 영경묘는 장대한 금강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신기역을 지나 상정역(폐역)에 다다르다보면 '준경묘', '영경묘'(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라는 설명글이 써있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강원도 기념물이자 국가지정 사적이기도 한 준경묘(濬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永慶墓)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다.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조선 왕조의 선대(先代) 능묘로 오십천 변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영경묘는 홍살문 너머 무덤을 지키고 서있는 키가 장대한 노거수(老巨樹: 오래되고 큰 나무) 소나무들에 장관이 펼쳐진다.

서울과 경주 남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구불구불한 소나무들과 너무도 다른 이곳 준경묘와 영경묘 일대는 오래 묵을수록 나무껍질이 벗겨지면서 붉은 빛 혹은 황갈색을 내는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이라 불리는 소나무 군락지로도 알려져 있다.

소나무들은 암석처럼 단단하다고 하여 강송(剛松)이라고도 부르는데 강원도 지역의 소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오래된 능 주변에서 살고 있어선지 경건하고도 단정한 느낌이 들고 강원도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의 푸르름이 진중하게 보이는 이유다.

나이테가 조밀하고 심재(心材 : 나무의 제일 깊고 딱딱한 속살)에 송진이 가득 차 쉽게 썩지 않으며 잘 갈라지지도 않는다.

예로부터 임금의 관이나 궁궐 사찰의 대들보 기둥 등으로 사용했으며 경복궁 중수 때, 불타버린 숭례문(崇禮門)의 복원공사도 바로 이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유난히 산이 많은 삼척은 옛날 궁궐 건축에 쓰이던 금강소나무가 많이 나는 곳으로도 널리 이름나 있는데, 삼척 사람들은 이 나무를 베어서 배에 싣고 동해를 돌아 서울에 진상하고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울창한 노거수 소나무 사이로 경쾌한 새소리가 들려오는 완만한 산길이 운치 있다.

 

동해바다가 지척에 있는 삼척시 하구에는 멋들어진 풍경의 유서 깊은 누각 죽서루(竹西樓)가 있다.

오십천이 감돌아 가는 물돌이의 절벽, 그 벼랑위에 날아 갈 듯 죽서루가 서있는 모습은 자전거족만이 느낄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관동 8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아닌 강을 품고도 제1경으로 꼽히는 삼척 죽서루는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의 맑은 물이 휘돌아가는 깎아지른 벼랑 위에 고고하게 서 있고 자연의 일부로 보인다.

죽서루는 경치가 좋은 절벽에 바위를 기초로 삼아 세워졌는데 열일곱 개의 기둥이 모두 길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누각을 지을 때 오십천 절벽의 바위 하나하나에 맞는 기둥들을 맞추느라 그 크기와 길이가 각기 다르게 된 것이며 죽서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자연을 담고 있고, 주위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가들이 의도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듯한 작품에서 보이는 '무위의 예술'은 선인들의 건축미를 엿볼 수 있다.

누각 마당에 살고 있는 350살이나 묵었다는 여러 그루의 고목 향나무도 눈길을 끌며 기품 있는 나무 모습에 옛날엔 '학자나무'라고 불렸던 향나무, 하늘을 향해 한껏 가지를 펼친 모습이 신묘하다.

죽서루 누각 안마당 고대 선사시대의 원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기기묘묘한 바위들도 볼거리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안목이 돋보이는 죽서루는 국보 제213호이기도 하며 죽서루 건너편에는 동굴 신비관, 시립박물관, 문화예술회관 등이 모여 있다.

조선 성종 때에 노사신 등이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을 기록한 관찬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소개돼있다.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 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아갈 듯한 누를 지었는데 죽서루라 한다. 아래로 오십천에 임했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서 영동 절경이 된다'

 

영동선 기차 길과 벗 삼아 함께 어울리며 흐르던 오십천, 죽서루를 지나면서 전형적인 도시 하천의 모습으로 바뀐다.

하천 변에 공원과 자전거 도로가 잘 나있고, 중상류 지역에선 잘 안보이던 시민들은 산책을 하기에 바쁘다. 이는 지난 2013년 오십천변 7만㎡ 부지에 조성한 '삼척 장미공원'은 규모가 세계 최대 규모로 장미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 세계 최대 장미공원으로 명성이 나 있는 '삼척장미공원'은 5월을 지나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오십천변 하류가 색색의 장미들로 화려해 지기 때문에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이렇게 봄과 여름사이를 지나고 있는 계절에 자전거족들은 광활함 보다는 아기자기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하천이 첩첩산중인 깊은 골짜기 사이를 50번 굽어 돌며 나타나는 자연경관은 삼척만이 가진 유일한 매력이다.

이후 서서히 바다와 맞닿으면서 삼척항에 다다르다보면 자전거족들에게도 하천물이 바다로 유유히 흘러들어가듯이 삼척의 매력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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