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자치단체 의장이 한 지역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 현직 의장이 언론기관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듯 보이는 경우는 바람직한 현상일까?

선출직 공인에 대해 그의 가치관이나 업무전반에 관한 것 그리고 도덕성 등이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비판언론에 대해 재갈을 물리고 걸핏하면 고소하고 '사이비 언론'이라는 막말까지 퍼붓는 천박한 권위주의는 하루 속히 버려야 한다.

명예훼손과 언론소송에 관해 대법원은 민변 등 시민단체가 한국논단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소송에서 대법원은 "공인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혹제기에 있어서는 진실에 부합하는지 또는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에 대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2. 1. 22. 2000다37524).

이런 결과는 언론 보도가 '실제 악의'에서 나왔거나 '허위의 여부를 소홀히 다룬 채'보도했다는 사실을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결한 적이 있다.

이는 공직자가 언론에 의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2008년 4월 29일 MBC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소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다룬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 이후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먹거리 수입은 비판에 직면했고,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집권 초기였던 이명박 정부는 집회를 강력하게 진압하기 시작했고 해당 방송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및 정정 보도의 조정을 신청했다. 중재위는 5월 15일 직권으로 보도문을 방송하라고 결정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7월 16일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시청자에게 사과할 것을 의결했다.

이어 주관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법원에 반론·정정 보도를 청구했다. 또 각종 시민단체가 제작진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무리한 소환 조사와 압수수색, 위치 추적 등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검찰은 2008년 4월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3년이 넘는 법정공방을 벌인 제작진은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반론·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외한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다.

대법원 2부는 2011년 9월 2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과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2010도17237)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을 요약하면 정부·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 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재판부는 “보도내용 가운데 일부가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만 국민 먹거리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사안이 보도 대상”이라면서 “보도 내용이 공직자인 피해자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이라는 형태로 언론인을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대법원이 명백하게 밝힌 것이다.

형사상 명예훼손죄 폐지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뉴질랜드(1992), 가나(2001), 스리랑카(2002), 멕시코(2007) 등이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2004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관련 보고서를 출간한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스토니아·그루지야·우크라이나·몰도바 등이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 자체를 폐지했고, 프랑스·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불가리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등이 명예훼손죄로 구금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2006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우크라이나 총리를 비판한 기자를 우크라이나 검찰이 형사처벌한 것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유죄판결을 번복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다. 이후 유럽인권재판소는 언론인들이 정부나 유력 정치인을 비판했다가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받은 여러 사례들을 검토했고, 대부분의 사건에서 회원국 법원의 결정을 번복했다.

오스트리아 법원 결정만 해도 세 차례 번복이 이뤄졌는데, 형벌이 과도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거의 모든 사건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명예훼손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도한 형벌이라고 결정했다.

이들 국가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이유가 있다. 각국 정부가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체제 유지’를 위해 남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나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을 제압하기 위해 남용할 수 있다.

더욱이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도리어 국민의 세금을 써가며 검찰을 동원해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미국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저 유명한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은 허위의 주장으로 공직자에 대한 평판을 저하시켰다 하더라도 그 주장이 허위임을 알고 있었거나 허위일 가능성을 무모하게 무시한 경우에만 명예훼손이 성립됨을 선포했다. ‘개리슨 대 루이지애나’ 판결(1964)은 이런 잣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형법을 위헌 처분했다.

이후 뉴욕·캘리포니아·일리노이·텍사스주 등 많은 주에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이 위헌 처분되거나 주의회에 의해 자발적으로 폐기됐다. 이렇게 된 이유도 유럽과 같다.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권력자가 남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4년 ‘아메리카인권협약’에 가입한 중남미 국가들은 언론인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명예훼손죄로 처벌되는 것에 대해 인권협약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했다.

현재 명예훼손과 관련해 언론인들이 구금되는 나라는 대부분 러시아·몽골·카자흐스탄·브라질·베네수엘라·카메룬·케냐·버마·타이·인도네시아·예멘·오만·아프가니스탄 등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들이다.

선진국 가운데는 스페인이 거의 유일한데, 지난 2003년 바스크 독립주의자가 국왕을 ‘고문의 괴수’라고 칭한 것을 형사처벌해 ‘오명’을 뒤집어썼다.

권력자가 검찰을 동원해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타격을 가하는 치욕을 이제 한국도 뒤집어쓰려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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