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실수라 불리는 자신의 행동들과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직면은 후회나 원망이라는 감정을 수반하게 된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행했던 자신의 감정적 판단들로 인해 죄책감에 빠질 수 있고, 반대로 부모가 나에게 물려준 감정적 판단들로 인해 내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감성을 지난 인간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도 난 나름 괜찮은 부모를 만난거야, 우리 부모님은 날 사랑하신 거야'라는 태도로 슬픔을 억누르기 보다는 그대로 허락하는 것이 좋다.

후회나 원망이라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단추는 역설적으로 후회와 원망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도록 허락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원망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허락하면서 동시에 그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용서를 본인이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가 창조한 현실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용서와 감사를 내 입을 통해 나에게 들렺어도 내면은 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감응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용서와 감사를 누가하는가보다 용서와 감사에 담긴 에너지가 진실한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따뜻하게 자주 불러주며 가장 먼저 자신에게 용서와 감사를 행해야 한다.

마거릿 폴(Margreat Paul)의 이야기처럼 집안의 애완동물 이름은 그토록 자주 불러왔지만 막상 자신의 이름은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진실한 용서와 감사가 쌓이면 타인을 만날 때도 용서와 감사표현을 진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나 자신의 진실한 용서와 감사로 연결된다면 타인의 용서와 감사를 갈구하는 삶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이 때 원망과 슬픔은 진정한 기쁨과 감사의 에너지로 변해간다.

인간은 자신을 찔렀던 칼로 타인을 찌른다. '나는 키가 작아', '나는 뚱뚱해', '나는 돈을 못 벌어', '내 스펙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야'라는 생각과 말들이 '나'에서 '너'로 변해 상대를 찌른다.

그리고 내 칼에 찔린 상대의 열등감을 기반 한 우월감을 행복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지나간 순간들 속에서 이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면 어쩌면 많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자신을 용서하는 만큼 타인을 용서할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용서가 시작되는 순간 어두웠던 적막이 걷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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