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중혁 변호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형법상 명예훼손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을 말해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고, 허위 사실과 진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최근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은 물론 국회에서도 형법 제307조 1항의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제307조 1항 때문에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의견 제시, 정치적 풍자나 논평, 패러디나 사설마저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허위사실의 보도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아야 하며, 언론사도 비리를 고발한다는 명목 하에 허위보도까지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까지 명예훼손죄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매우 위축시키는 것이며, 현실에서는 언론보도가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업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기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언론사의 경우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라면 위법성이 조각되지만, 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은 모호한 개념이며 설사 처벌은 안 받더라도 수사나 재판을 받아야 하는 등 형사절차에 입건되는 것 자체가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불합리가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에게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기꾼이 학력이나 경력을 사칭해도 그것을 이용해서 문서위조나 사기, 공무원자격사칭 등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죄가 안 되는데 반해, 오히려 이를 공공연히 밝히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선배 변호사님이 예전에 회사 거래와 관련하여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목격하고 법률상 제3자인 본사에 보고하신 적이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그 비리자가 선배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이 경우 외관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제도 때문에 법률 문외한인 비리자(고소인)는 무고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또 명예훼손은 비리자가 아니라 오히려 선배님이 당한 셈인데, 수사기관에 이야기한 것은 전파가능성이 없어서 비리자는 명예훼손으로도 처벌받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은 주로 민사소송을 통해 처리되며, 국제적인 추세는 명예훼손죄에 대한 형사처벌의 폐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형사처벌에 의한 해결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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