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익문 법무사(전북회)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정의를 표상해 온 것은 여신이었다. 테미스(Themis)는 이치의 신이었고,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 디케(Dike)는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이었다.

고대 로마시대 초기에는 정의의 여신이라는 관념이 없었으나 로마제국 확장 시기에 이르러 디케가 로마식으로 변용·수용되면서 정의의 여신상으로서 유스티치아(Justitia)상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상의 모습은 그것을 조형한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의 정의의 여신상은 눈은 눈가리개로 가리워져 있고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유스티치아가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눈을 똑바로 뜬 모습이었다.

정의는 밝은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 말경에 이르러 독일에서 눈을 가린 유스티치아상이 나타났고 그 후로 눈을 가린 모습은 보편화 되었다.

그렇다면 정의의 여신상은 왜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일까.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나는 정의의 여신상을 대학시절 사진으로 처음 본 이후 이 궁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미로를 헤맸다. 그러다 언제였던가, 우연히 최종고 교수의 '법상징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 갈급증은 해소되었다.

칼은 정의를 관철하기 위한 힘을, 저울은 정의의 핵심인 형평을 상징한다는 데에는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과연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눈 먼 상태에서 알아내는 것은 맹목이 아닐까. 그러나 진리는 역설에 있었다.

눈은 감각기관으로 외부의 모든 것을 감식하는 역할을 한다. 눈을 통해 받아들인 감각적인 사실은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렇다. 눈을 가림으로써 감각을 자제할 수 있고 더 공평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눈가리개는 불편부당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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