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 8일 오후 2시,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을 100여 일 앞둔 어느 여름날이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자리한 서울소방학교에 취재진들이 속속 몰려왔다. 그날은 3월부터 석 달 넘게 진행된 제 1기 119 특별구조대의 교육이 끝나는 날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119 구조대 발대식이 있는 날이었다.

대부분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들어온 대원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입게 된 제복과 베레모에 기분이 오묘해졌다. 떨리는 것도 잠시, 발대식이 진행되는 동안 대원들의 가슴엔 위험하고 힘들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 깊이 새겨졌다.

▲ 제 1기 119 특별 구조대 발대식 당일

화재 진압에서 인명구조까지

1912년에 경성 소방서가 설치된 이후 소방서의 주 업무는 화재 진압이었다. 중간에 풍수해나 설해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때도 있었지만 소방서는 화재를 진압하고 경계, 예방하는 임무를 맡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1982년에 119 구급대가 편성되면서 화재진압 및 경계에 구급까지 담당하게 되었는데, 일선에서 희생정신이 강한 대원들을 선발하여 화재 현장에서 인명구조를 할 수 있게 했지만 어디까지나 화재 현장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안전에 대한 욕구도 커져갔고, 80년대 들어 화재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가 빈번해지자 구조의 영역을 넓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결정적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고도의 전문기술과 체력을 가진 구조전문가를 양성해 운영해보자는 쪽으로 뜻이 모였다.

특수부대 출신의 첫 구조대원들

88년 1월, <제1기 119 특별구조대> 모집공고가 동사무소마다 붙었다. 지원조건은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하사 이상의 계급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었고, 지원자들은 필기시험, 건강검진, 체력검정 및 면접을 거쳐 구조대원으로 최종 선발됐다.

위험한 곳에 투입되어야 하는 데다 첫 119 구조대였기 때문에 선발과정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체력검정의 난이도가 높아 미달자가 속출했다.

예를 들면, 40kg 모래주머니를 들고 50m 왕복달리기를 한다거나 40kg 역기 20개 이상 들기, 턱걸이, 평행봉 등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야 했다.
 
특수부대 출신의 대원들은 다양한 특기를 갖고 있었다. 의무, 통신에서 폭파, 화기에 스킨스쿠버, 스카이다이빙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기술을 갖고 있어서 신참자를 바로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각종 안전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119 구조대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수원, 인천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총 9개대가 발족되었는데, 서울의 경우 중부소방서, 종로소방서와 올림픽 시설이 있는 강동소방서까지 3개대가 창설되었다. 발대식 이후 일선에 배치된 1기 구조대원들은 열악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구조 업무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대원들과 달리 일선 소방서에는 장비는 물론 대기실과 사물함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있는 구조장비는 변변치 않았고, 출동 차량도 없어서 대원들은 제대로 된 구조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상부에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잦은 마찰도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해야 했고,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당시에는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서 많은 구조대원들이 홀로 악몽과 싸우고 극복해야 했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힘들어하는 대원들도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화재는 물론 다양한 사고현장에서 구조대의 활약은 이어졌고, 시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서울에서는 88년 이후 순차적으로 각 서마다 구조대를 창설하기 시작했다. 1기 대원들은 각 서에 발령을 받아 구조대 창설을 돕고 그간 쌓인 노하우를 전달했다.
 
94년 10월부터 방영된 KBS <긴급구조 119>는 119 구조대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여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 구조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온갖 사소한 신고전화가 쇄도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후 연이어 발생한 대형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119 구조대’의 모습이 확실히 각인되었다.

구조대는 가장 먼저 사고현장에 도착해서 마지막 한 사람을 구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와 반대로 구조대원들의 작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해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대원들은 한 달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제대로 된 휴식공간도 없이 길거리에서 쪽잠을 자며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90년대의 여러 대형사고 이후 재난관리법이 제정되어 모든 사고 현장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면서 구조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고 다양해졌다.

각 소방서에 설치된 구조대 외에도 중앙구조대, 수난구조대, 산악구조대, 화생방구조대 및 국제구조대 등 다양한 목적의 특수구조대가 설치되어 각종 대형 특수재난사고에 대비하도록 제도가 정비되었고 구조 장비를 포함한 작업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 구조대원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의 위대함

편하거나 쉬운 일도 아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엄청난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때론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8년에 첫 119 구조대원들부터 오늘날의 구조대원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구조를 업으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 생명을 구하는 일의 위대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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