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석 판사(서울고법)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축구는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가슴 졸이며 본 경기에서 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심판의 편파판정을 비난하면서 마치 '공정한 심판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축구가 선진화 되면서부터는 경기 규칙을 정확히 알고 실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심판만 욕해서는 16강 진출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판에 대한 비난이 패배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형사절차를 잘 다루고 있어 하버드 법대 신입생들에게 추천된다는 코미디 영화 ‘나의 사촌 비니'에서 신참 변호사 비니는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사촌동생을 변호한다.

비니는 재판장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해 법정모욕죄로 구류에 처해지기도 하고,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고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다시 구류에 처해지는 등 법정에서 3번이나 구치소로 끌려간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크게 이슈화 될 수 있는데도,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판사마다 자신의 법정에서 지켜야 할 법정예절을 공표하고 모두가 이를 존중하고 지킨다. 미국의 판사들은 우리나라 판사들보다 더 공정하고 더 존경받을 만해서 그런 것일까?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미국판사의 모습은 당사자에게 마약을 했냐며 이른바 '막말'을 하기도 하고 뇌물을 받아 구속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이 판사를 존중하고 법정에서 예의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나 소설에서는 법정이 아름답고 훈훈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쟁터에 더 가깝다.

재판에서 지면 감옥에 들어가 자유가 박탈되든가 아니면 자신이 평생 모아온 재산을 모두 날리게 될 수도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정의 권위와 엄정한 절차진행이 필요하다. 법정모독으로 세 번이나 구류 당한 신참 변호사 비니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정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결국 무죄를 받아내는 장면은 법정 권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도 법정에서 들리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외침은 판사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 법정이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그리고 그만큼 '존경 받는 재판장'의 어깨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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