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에 나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 ‘Im Wunderschonen Monat Mai’가 돌아왔다.

5월은 어린이와 어버이, 스승의 날이 함께 있는 가정의 달로 우리의 마음 또한 따뜻하게 해주는 달이기도 하다. 또 한여름으로 넘어가기 전 싱그러운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청명의 달이며 계절의 여왕이라 부를 수 있다.

피천득의 시 <오월>을 보면 밝고 맑고 순결한 신록(新綠)의 달로 5월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봄의 정취는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봄기운이 만연한 5월의 정취가 어느 샌가 우리의 삶에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데,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과 가을의 길이가 점점 줄어들고 여름의 길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2100년이 되면 북반구 여름 길이가 반년으로 늘어나고 겨울은 채 한 달이 안될 것으로 전망했다.

1950년대까지 4계절의 길이가 비슷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서서히 끓고 있는 냄비 안의 개구리와 같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이 든다.

많은 예술가들이 뚜렷한 4계절을 예찬하며 각 계절의 특징들을 묘사한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환경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며 인류의 유산인 그들 사계의 시대별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비발디(Vivaldi)

비발디의 사계는 가장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계절을 표현한 가장 고전적인 작품이다. 소네트라는 짧은 정형시에 음악을 붙여서 더욱 곡의 분위기와 느낌에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명작이다.

‘빨간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이 있는 비발디는 25살에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선천적으로 천식이 심해서 미사 집전이 힘들었다.

사제로서의 충실한 업무보다 음악에 관심과 재능이 많았던 비발디는 베니스의 피에타 고아원 합주단을 당대 최고수준으로 만들며 왕족과 귀족, 고위직 성직자들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명성을 얻은 비발디는 연주와 작곡활동을 꾸준히 해나갔으며 40살에 만토바 지역 영주였던 필립공 으로부터 궁정악장 직을 제안 받는다. 7년동안 만토바에 머문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이 탄생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사계 (Le quattro stagioni)>다.

비발디는 바이올린의 명수답게 기교와 표현력을 악보에 담아냈으며, 많은 연주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보태어 각기 다른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비발디가 활동하던 17~18세기를 학자들마다 시기의 이견은 있지만 보통 소 빙하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 소 빙하기의 영향으로 유럽 농작물은 생산량이 감소했고, 이는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등 각종혁명과 종교적으로는 마녀사냥 등으로 이어지며 많은 사회적 혼란에 일조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한편 현악연주가에게는 꿈의 악기인 스트라디(Stradivarius)나 과르네리(Guarneri del Gesu)등의 명기가 탄생한 시기도 이 때인데, 기후의 영향으로 나무에 촘촘한 나이테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악기의 음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 하이든(Haydn)

하이든의 사계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연주길이가 2시간이 넘어가는 긴 작품으로 비발디의 곡이 기악작품이라면 하이든의 사계는 3명의 성악가, 기악, 합창이 함께하는 오라토리오(Oratorio)다.

오라토리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종교적 성격을 띤 움직임(춤이나 동작) 없는 오페라와 같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하이든의 사계를 얘기하기 이전에 그의 또 다른 오라토리오 명작인 <천지창조(The Creation)>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구약성서와 밀튼의 <실낙원>을 기반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대중적인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에 힘입어 3년뒤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사계>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의 사계는 2년여에 걸쳐 작곡되었고 영국의 시인 J. 톰슨(James Thomson, 1700∼1748)의 시 <사계>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천지창조와는 대조적으로 내용은 서민적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농민의 생활상과 젊은 농부의 사랑을 그리며 하느님에 대한 감사, 기쁨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농민의 눈으로 본 사계절을 묘사한 이 작품은 전체 4부 39곡으로 이루어져있다.

◆ 글라주노프(Glazunov)

기악과 오라토리오에 이어 발레음악에도 사계가 있다. 러시아 작곡가인 글라주노프의 발레 음악 <사계>인데 차이코프스키와의 발레공연으로도 알려진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의 안무로 초연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계절별 음악이 아닌 12달별의 음악을 모아놓은 모음집이라 하겠다.

글라주노프의 사계 발레공연은 당시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그의 음악은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고 있다.

음악은 러시아의 민속리듬과 전통적인 선율이 음악 속에 흐르고 있으며, 겨울을 중시하는 러시아 특성답게 곡의 시작이 겨울부터 시작한다.

40분 남짓의 길이의 글라주노프 <사계>는 그의 전성기인 34살에 완성되었는데, 어린 시절의 천재성에 비하면 40대 이후의 그의 음악은 보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의 제자인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그리고 동시대 그를 한때 존경했던 스트라빈스키가 혁신적이며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였다면 글라주노프는 전통적 화성과 낭만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성향 때문에 사계음악은 러시아의 자연을 잘 표현하면서도 선율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 피아졸라(Piazzolla)

비발디의 사계 못지않게 현대 들어서 자주 연주되고 있는 곡은 피아졸라의 사계다. 탱고 작곡가답게 그의 사계에는 열정과 고독,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항구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사계절 풍경을 탱고로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사계라는 작품을 염두해 두고 작곡한 것이 아닌 그때 그때의 풍경에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그래서 처음 작곡된 계절인 여름(Verano Porteno)은 1964년에, 가을(Otono Porteno)은 1969년 그리고 봄(Primavera Portenas)과 겨울(Invierno Porteno)은 각각 1970년도에 발표되었다.

‘Portenas’는 ‘항구에 사는 사람’ 또는 ‘항구 출신의 사람’을 뜻하는 스페인어 ‘Porteno’의 복수형으로 항구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뜻한다.

원래 피아졸라의 반도네온과 바이올린, 일렉기타, 피아노, 베이스인 5중주로 연주되었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가 친구인 데샤트니코프(Leonid Desyatnikov)에게 편곡을 의뢰해 비발디와 같은 형식인 챔버와 바이올린 협연형식으로 현재는 자주 연주 되고 있다.

탱고의 자유로움과 즉흥성으로 연주자 마다의 감성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며, 기돈 크레머의 레코딩도 친구의 편곡 그대로 연주하지는 않고 즉흥적인 부분이 종종 있기도 하다.

◆ 막스 리히터(Max Richter)

현대 대표적 미니멀리즘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사계는 비발디 사계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는 재창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막스 리히터는 곡의 75퍼센트를 버리고 새로 작곡을 했는데 비발디의 언어는 그대로 유지했다.

듣다 보면 그의 사계가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현대적이며 기묘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지게 만든다.

그의 음악은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형상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그 과정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는 모습처럼 비발디 사계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출신의 막스 리히터에게 음악은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주된 수단이자 무기이다. 그는 반전시위에도 참가하고 최근에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모티브로 작품(voice)을 발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재즈가수 니나 시몬의 말을 인용하며 “아티스트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수많은 사회, 경제, 정치 환경적 질문을 통해 예술가의 의무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사계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각심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 인공지능(AI)

얼마 전 인공지능이 미래 기후를 예측해 비발디 사계를 편곡한 작품이 연주되었다. 연주는 단조로 시작하며 화창한 봄 날씨를 표현한 음악대신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으로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체결 이후 지금까지 국가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탈 석탄발전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하루에 멸종되는 생물이 30~70여종에 이르며 일년에 1만종에 이르는 생물이 멸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 6차 대멸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3장에서 강인한 영혼 ‘야크샤’가 현자인 ‘유디스트라’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었다.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는데도 살아있는 자들은 자신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고 대답했다.

아름다운 사계음악을 들으며 우리모두가 심각하다고 알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기이다.

 

☞ 추천음반

비발디의 사계는 너무 많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있어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하이든은 원전연주에 충실한 헬무트 릴링(Helmuth Rilling)과 아르 농쿠르(N.Harnoncourt)를 추천 드린다.

글라주노프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앙세메르(Ernest Ansermet) 지휘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훌륭하다.

피아졸라는 기돈크레머의 연주, 그리고 피아졸라가 직접 레코딩한 5중주음반을 들어보시길 바란다. 끝으로  막스 리히터는 바이올리스트 다니엘 호프(Daniel Hope)의 연주가 그라모폰 음반으로 발매됐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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