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읽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세계정보산업센터가 하루에 사용되는 정보의 양을 조사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매일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평균 약 34기가바이트였다고 조사됐다. 이는 기본적으로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으로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로저 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의 주의는 보다 짧은 간격으로 쪼개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런 연구에 쏟은 엄청난 노력들을 우리는 충분히 인정한다. 또, 연구자들은 크게 지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절제된 발언이다.

우리 모두가 지금 경험하고 있고 이름도 제대로 붙인, 시간의 '파편화'라든가 하루 34기가바이트에 이르는 무차별적인 정보로는 깊이 읽기도 깊은 사고도 증진할 수 없다.

▲ 사진=르느와르의 '책읽는 여인'.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연방예술기금의 보고서에는 많은 사람이 이전보다 책을 적게 읽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방식의 읽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정당한 우려가 담겨있었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에 문해 기반에서 보다 디지털적인 기반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우리의 읽기 습관에 대해서는 혼동을 하기가 쉽다.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들 중에는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첫 글자를 석판에 휘갈기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읽기'로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비춰진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읽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왜 읽는가?", 그 이유를 묻는 질문을 의식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몇몇 작가들은 우리의 생각을 더없이 크게 자극한다.

이제 우리 스스로 "왜 읽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 '예전에 읽는 자아를 발견한 후에 돌아온 대답은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상을 뒤로한 채 저의 상상 너머, 저의 지식과 인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었다'는 말은 '읽는 삶'이라는 독특한 유산으로 자신에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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